송길원의 요즘생각

작성자 admin 시간 2022-05-12 15:3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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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 날을 하루 앞둔 지난 7일, 수목장에 고요히 울려 퍼진 노래가 있었다.

찬송가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445장)였다. 조금은 어리둥절이었다. 일반적으로 부르는 추모곡과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노래는 간절했고 둘이 부르는 듀엣은 감동 그 자체였다.
“캄캄한 밤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의 길 되시고
나에게 밝은 빛이 되시니 길 잃어버릴 염려없네.”
사연이 있었다. 한국전쟁 후 부산 피난민 시절이었다. 옥고에서 얻은 지병으로 아버님이 돌아 가셨다. 모친은 시설에서의 공동생활로 자녀 교육이 불가능 해지자 특이한 방법을 택하셨다. 해마다 한식날이면 3일간 결석계를 내도록 하셨다. 두 아들을 데리고 멀고 먼 부친 산소를 찾으셨다. 경부선 완행열차를 탄다. 무려 12시간을 달려 영등포역에 도착한다. 이번엔 버스다. 인천행 버스롤 타고 구로역에 내린다. 또 다시 걷기를 수십분 그렇게 해서 부친 산소를 찾았단다. 그야말로 BMW(Bus, Metro, Walk)였다. 도착한 곳은 가리봉교회 뒷동산이었다.
모친은 도착하자마자 숨도 돌리지도 않으시고 ‘태산을 넘어~’를 부르셨다. 말 그대로 묘지 찾아가는 일도 인생도 태산이었다.
하지만 모자의 찬송은 하늘의 소망을 담은 승리의 찬가였다. 그리고는 어린 두 자녀들에게 부친의 존재를 가슴에 새겼다. 부친의 삶은 두 자녀에게 신앙 유전자로 새겨졌다.
이보다 더한 자녀교육이 또 어디 있을까? 그렇게 자란 두 자녀가 유의신목사님이고 미국에 수의과의사로 있는 유만종박사다.
“하늘의 영광 하늘의 영광 나의 맘속에 차고도 넘쳐 할렐루야를 힘차게 불러 날마다 빛에 걸어가리”
그제야 유의신 목사님이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늘노래단 찬양팀을 만들어 전국방방곡곡을 누볐던 이유를 알았다. 당시 늘노래단은 우리나라 찬양팀의 효시였다. 부친 유재기목사님은 농촌운동의 선구자이셨다. 아버지의 얼이 새겨진 그가 가장 많이 찾았던 곳이 농어촌 교회였다. 태산을 넘는 것이 뭔지도 몰랐을 어리디 어린 아들이 이번에는 찬양으로 농어촌 교회를 깨웠던 셈이다.
“광명한 그 빛 마음에 받아 찬란한 천국 바라보고 할렐루야를 힘차게 불러 날마다 빛에 걸어가리”
아침식사를 접대하면서 난, 또 다시 인생의 의미를 새긴다. 가족사에 얽힌 아름다운 이야기는 하늘의 메시지가 된다. 지금은 고생스럽지만 ‘찬란한 천국’을 바라보는 나그네 삶을 또 다시 가슴에 새긴다. 내가 묘지지기로 있으면서 누리는 호사는 바로 이런 것이다.

한 동안 나도 이 곡을 많이 부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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