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원의 요즘생각

작성자 admin 시간 2020-06-03 08:4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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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학교의 선생님이 결혼을 하게 되었다. 한 학생이 선생님께 물었다.
웨딩드레스는 왜 흰색이에요?”
주춤거리던 선생님이 친절하게 답한다.
, 그건 말이야. 신부의 마음이 백색처럼 순결하기 때문이지.”
바로 그 순간 다른 녀석이 이렇게 또 묻는 것이었다.
그러면 왜 신랑의 옷은 새까매요?”
“.......”
웨딩드레스가 하얀 이유는 뭘까? ‘자신이 선택한 남자의 색에 물들기 위해서. 내가 선택한 남자만을 위해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순종의 의미도 담겨있다. 나아가 신랑의 턱시도가 검은 이유는 까만 턱시도가 새하얗게 될 때까지 사랑하고 또 사랑하겠다는 헌신의 의미다. 이런 의미들을 알고 옷을 입는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최보윤기자(조선)의 리포트에 의하면 경제적 이유가 그 뿌리다. 실용주의다.
“‘신부흰색 드레스란 개념이 일반화된 건 180년 전쯤이다. 당시 세계의 중심이었던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1840년 결혼식에서 순백색 드레스를 입은 이후. 이전만 해도 신부 드레스로는 흰색보다는 컬러 있는 의상을 선호했다. 줄리아 베어드가 쓴 빅토리아 여왕전기에 따르면 당시의 흰색은 순결의 의미보다는 재력을 뜻했다. 흰색은 결혼식뿐 아니라 평소에도 입을 수 있는 실용과 거리가 멀고, 염색보다 순백색으로 표백하는 비용이 훨씬 비쌌기 때문이다.”

오늘날 결혼식은 의미도 모른채 엉겹결에 대충, 건성으로 끌려가는 게 한 둘이 아니다. 그저 웨딩도우미가 이끄는 대로 30분짜리 단역배우가 될 뿐이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오늘날의 결혼은 참다운 감동대신 적당한 기능을 수행하며 파악이 가능한 감동을 추구한다.” 한마디로 말해 결혼공장(예식장)에서 하는 벽돌 찍어내기 결혼이다.
나도 언젠가 겪게 될 자녀 결혼식, 그동안 생각이 많았다. 드디어 10여일 전, 둘째 아들의 결혼식이 있었다. 형보다 먼저였다. ‘출생 순서보다 준비되는 대로가 우선이어서 가족들이 서로 눈치 볼 일은 없었다. 오히려 가정사역자 가정의 결혼식이 어떨지 하는 기대가 부담스러웠다. 한편 코로나19가 마음을 졸이게 했다. 나의 작은 결혼식에 대한 약속이나 성격상 축의금 청구서를 뿌리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소수에게만 알리기로 했다. 하지만 발 없는 소문은 당일까지 혼주인 나와 아내에게 무거운 짐이었다. 소홀하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걱정이 많았다. 정작 오신 손님들보다 결혼식을 알리지 않은 것에 섭섭하다는 소리를 더 많이 듣게 될 줄이야!(은근히 좋으면서 호들갑 떠는 이들도 있긴 하다. 정작 내가 미안해했던 분들은 뒤늦게라도 기어이 축의금을 전달하는 분들이었다.) 미국처럼 초대된 사람만 결혼식에 참석하는 예약된 결혼식이 훨씬 좋다는 생각을 했다. 동네음악회도 티켓과 지정좌석이 있잖은가? 정작 자녀들 입장에서 본인들과 관계없는 부모손님들(실제로 아들의 결혼식이 아니라 시아버지 취임식같은...)로 가득 찬 결혼식 문화를 바꾸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란 진단이다. 어쩌면 코로나 19가 천년동안 바꿀 수 없었던 중국의 음식문화인 공찬제를 분찬제로 바꾸었듯이 이제 한국의 결혼식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전망해 본다. 거기다 내게 아무리 가정사역이 소중하다 해도 두 아이들을 제물(?)삼고 싶지는 않았다. 목회자 아들이라는 이유로 설교시간을 통해 그들의 사적 영역을 침범한 원죄(?)가 한 둘이 아니지 않은가? 나는 이런 반성을 하면서 이번 결혼식의 소회를 나누고 싶었다. 달려와 축하해 준 이들과 나를 기억하고 기대하는 이들에게 대한 답례로 몇 차례 연재를 해 볼 생각이다.
이번 결혼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아들과 며느리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나와 사돈은 믿어주고 도움을 청할 때 지원군이 되어 열심히 응원해 주었다. 아이들 이야기에 귀 기울였고 문제가 생기면 협의했다. 서로가 한 발씩 양보하는 수준이었다. 나의 목표는 분명했다. 체면치레가 아닌 둘이 행복한 결혼식이었다. 나는 결혼을 통해 그들이 어른이 되는 것을 학습하기를 원했다. 착한아이 신드롬에 사로잡혔던 내 아들 준이에게는 유명세(?)를 치른 트라우마를 치유할 절호의 기회였다. 나는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아내랑 아침마다 주기도문 길을 오르며 참 많이 기도했다.
상처 입은 치유자가 아니라 치유 받은 치유자로 살게 해 달라고.
결혼식은 나와 내 아내에게 하나님의 마음에 물들어가는 성장과 성숙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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