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원의 요즘생각

작성자 admin 시간 2021-01-14 10:5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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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정인이 양모를 찢어 죽여야 한다.’고 할 때 제 가슴이 뜨끔합니다.
주여! 저를 영원히 버리지 마소서.”
저도 남편이 속을 썩이니 자녀에게 화풀이를 많이 했습니다.
남편에게 사춘기 딸의 방황을 고발해 ‘군대식 폭행’을 당하게 했습니다.
정인이 양모는 거의 모든 한국교회 여성들입니다.”
어제 아침 받은 편지의 서두다. 고백은 절절했다. 자신의 성장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가정에서의 주의 말씀대로 사는 법을 모르고 문화 속에, 폭력에 노출되어 양육 받고 교회 목사에겐 잘하며 남편인 저의 아버지에겐 상처로 인해 언어폭력을 쓰는 모친에게 제가 자랐습니다.”
지금도 ‘어린아이처럼 목사님에겐 잘하고 아버지를 돌보지 않는’ 엄마 권사를 만날 때마다 힘들단다.

툭하면 ‘남편 탓’ ‘시댁 탓’하며 싸웠고 그 후엔 기도원 가서 울고 기도하고 오고를 반복했단다.
편지를 쓴 이는 이전에 하이패밀리 <가정사역 아카데미>를 찾은 학우였다.
“목사님께 가르침 받은 걸로 남편과 사이는 정말 좋습니다.
그러나 딸은 독립해 나가 신앙의 휴지기이며 남친들에게 아빠사랑 갈구하며 방황을 많이 하였습니다.
요새 독일 남친을 사귀고 결혼까지 생각합니다.
이 딸에게 ‘H대’ 가라고 푸시(push)했던 게 기억나네요.
지금 저는 남을 가르치기보다 제 자신을 성찰하며 가정질서에 순종하는 법을 지키려고 모든 것을 중지하고 조용히 보내고 딸과도 만나거나 카톡 대화할 때 사과하고 다정한 엄마로  살려고 노력중입니다.”
배철현교수(전 서울대)는 멸망하는 로마제국을 마감하고 중세라는 새로운 시대를 연 것은 ‘고백’이라고 한다.

사십대 초반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397년)을 통해 로마멸망의 현상을 찾아 나섰다고 했다.

배교수는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에 앞서 쓴 <독백>(387년)과를 이렇게 비교했다.
“‘독백’이 자신의 현재를 유지하고 자신의 철학적 사고에 대한 지적인 놀이라면, ‘고백’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있는 그대로 고백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겠다는 영적인 몸부림이다.”
앞선 편지의 ‘영적 몸부림’의 고백은 ‘고발’로 이어지고 있었다.
“기독교가 기복의 종교로 타락하니 이렇게 되고 좌우로 갈라서 신앙이 아닌 이념으로 서로 싸우다니...
그런데 목사님들도 단 한마디 ‘내탓이오’를 안하니 신자들은 거짓 유튜버들에게 속아 ‘좌’나 ‘우’나 모두 ‘남 탓’만 하고

저주하는데 한통속입니다.
‘어찌 할꼬’ 가슴을 치며 ‘하나님!’ 외마디만 절로 나오는 가운데 정인이 사건이 났습니다.
그동안 ‘성서한국’, ‘세계선교’란 모토아래 가정에서의 역할과 질서를 성경대로 가르치지 않는 교회 때문에 최대의 피해자가 정인이 양부모이고 저랍니다.”
한국교회가 폭망하기 전, ‘내 탓이오’의 고백운동을 시작할 수는 없을까? 이번에는 조문객의 발길이 아니라 편지가 주는 무게에 짓눌려 뜬 눈으로 밤을 지새고 있다.
“오, 주여!, 제 속에도 분노라는 괴물이 있습니다. ‘분노를 분뇨(糞尿)’처럼 다루라고 가르치면서 가족들에 대한 분노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가르치는 대로 살자. 그렇지 못하겠거든 사는 대로만 가르치자’는 모토는 허울 좋은 장식품이었습니다.

아닌 척, 괜찮은 척, 고상한 척, 척척척... 제가 껍데기 남편이고 껍데기 아버지고 껍데기 목사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주의 인자하심과 긍휼을 베풀어 주소서.
주여! 저를 영원히 버리지 마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