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원의 요즘생각

작성자 admin 시간 2020-02-19 08:4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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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건축이야기냐고? 하이패밀리의 <W-스토리>를 방문하는 이들이 건성건성 ‘대충’ 보고 가는 것이 마음이 아팠다. 이사야의 지적 그대로였다. “(그들은) 많은 것을 보았으나 마음에 새기지 않았다. 귀가 열려있었으나, 귀담아 듣지 않았다.”(사 42:20, 표준새번역)
기생충 중에 기생충은 ‘대충’이다. 방문객들이 던지는 질문은 정해져 있다. 언제나 크기(‘몇 평이죠?’)다. 개념(‘컨셉은 뭔 가요?’)을 묻는 이들은 없었다. 틈나는 대로 건축에 담긴 뒷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이유다.

“교회 문의 경우 건축가들은 좀 무겁고 여는 데 좀 더 힘이 쓰이는 것을 사용한다. 우선 이런 묵직함은 종교 건물에서 당연히 기대되는 엄숙함이 구체적인 건물의 무게로 표현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문을 여는 동작의 속도를 좀 줄여서 그 안으로 들어갈 마음의 준비를 하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서현, 건축가, 서울대교수)
본관 건물의 2층에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상징문이 있다. 20명의 종교개혁가들이 초상이 목판화(최 바오로 作)로 새겨져 있다. 서교수가 말한 ‘묵직함’에 역사의 무게를 더했으니 상징문이 가지는 엄숙함은 얼마나 커야 할 것인가? 참수(斬首)와 화형(火刑)속에서도 꺾이지 않던 그들의 기개와 믿음의 크기를 어떻게 측량할 수 있으랴?

서교수는 말한다. “더구나 문손잡이를 잡았을 때, 거기서 무언가 범상치 않은 부분을 발견했다면 우리는 건물 전체에 기대감을 갖게 된다.”
상징문에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설 때는 손잡이가 있다. 그러나 안에서 밖으로 나갈 때는 손잡이가 없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간이면서 또한 닫힌 공간임을 드러낸다. ‘콘클라베’(conclave·열쇠로 잠그는 방, 비밀회의)다.
오로지 하나님만을 바라본다. 나의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그 분 속에 머물라는 상징이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로 이곳을 나서라는 지엄한 명령이다.
손잡이가 없는 이유다.
(문은 마산삼일교회의 김명환장로, 김옥수권사, 김은 가족의 헌신으로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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